본문 바로가기

01. 종이책

[서평]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제목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저자 - 김훈
출판 - 생각의 나무
분량 - 287쪽
ISBN -9788984987302

읽은 지는 조금 된 것 같은데, 이차저차한 이유 때문에 이제서야 요약을 해봅니다. 그러다보니 언제 읽었느냐는 듯이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저자의 이와 같은 에세이집을 이전에도 한 권 소개를 했는데 그리 다르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살며 생각하던 내용들을 풀어나갔다고나 할까요 ?

다만, 이 책에서 제가 재미있게 끄덕거리면서 읽었던 부분들은, 칼과 관련된 내용 그리고 양희은, 김추자, 심수봉이라는 가수들에 대한 해석 부분입니다. 원래 저자가 칼과 현에 대한 글을 쓴 바 있어 그 부분 만큼이야 낯설지 않았으나, 선생이 흠모(?)하는 여가수들을 분석해낸 부분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다 잘 알 수 있는 가술들은 아니었지만, 양희은씨에 대한 글을 읽을 때에는 아 그렇구나 라는 공감이 형성된다고나 할까요 ?

노래를 듣고, 가수를 알아가면서 글을 쓰는 분은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구나 그리고 그 글이 읽는이에게도 공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역시 글쓰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건조하기만한 제 글에 비한다면... 돈주고 책 사서 읽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저자가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를 하나 뽑아보자니, 아마도 솔직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꾸며지지 않은 솔직함,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대중들의 기대나 평가기준을 위배할 지도 모르지만, 그만의 문체를 통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술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인정이 되고 이해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어필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나서지도 않으며, 너무 튀지도 않지만, 충분한 고민을 거쳐서 나온 솔직한 의견 그대로가 대중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구나란 생각입니다. 물론 그 의견 하나 하나가 모두 읽는이들의 의견과 합치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좀더 찾아서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는 읽었는데.. 아직도 제 이해도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경우의 '국민정서'라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조국독립을 원하기는 하지만 반일투쟁은 무서워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친일을 할 만한 지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그저 그날그날 꾸역꾸역 벌어먹고 살았을 것이다. (이런 인간상은 채만식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이만치 살아보니 그것은 분명하다. 비유가 좀 동떨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한 '나의 정서'는 대체로 이와 유사한 것이다. 나는 나의 이런 미적지근한 통일정서를 후안무치(후안무치)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국민정서'는 나는 모르겠다. 내가 이 지경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주변에는 온통 이런 사람들뿐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역사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한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통일을 하건 안보를 하건 민주주의를 하건 간에 결국은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57쪽)

손은 세상과 타인을 움켜잡고, 쓰다듬고 깨우고 재우고 변형시킨다. 손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육신이다. 일본음식점 조리사들이 생선의 각을  뜰 때, 그의 칼은 생선의 해부학적 구조에 밀착되어 있다. 칼은 살과 껍질 사이, 살과 뼈 사이를 바람처럼 넘나들되 흔적을 남기지 않다. 자연에는 직선이란 없다. 칼은 직선이고, 손으로 칼을 쥔 자의 관념 속에서 자른다는 행위는 직선으로 미리 자리잡고 있기가 쉽상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관념 속의 직선을 버리고 재료의 구체성을 따라간다. 그의 손은 재료와의 대결구도를 이루지 않는다. 그것이 손의 다스림이다. 그의 칼은 생선과 다투지 않는다. 그의 칼은 생선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면서, 생선을 재우듯이 생선을 잡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생선의 모든 은밀하고 후미진 구석구석을 열고 펼치고 뜨고 저미고 들어낸다. 그의 손에 남아서 겉도는 힘의 찌꺼기가 묻어있지 않다. 그의 손은 재로의 내밀한 본질에 가닿는 발견자의 손이지만, 대상을 주물러서 변형시켜놓겠다는 조형의지를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다. (173~174쪽)

양희은은 송창식, 조용필, 위키리 같은 가수들과 함께 대중의 음악 정서를 두 박자 트롯으로부터 해방시킨 선구적인 여가수다. 그 이전에는 들리는 것이라고는 온통 뽕짝이거나 후방전시 체제를 다그치는 군가뿐이었다. 나는 젊은 양희은을 좋아했고 지금도 자주 듣는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힘있고 맑다. 양희은 목소리의 힘은 세계를 안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밖으로 밀쳐내는, 공격적인 힘이다. 그리고 양희은의 맑음은 잡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배타적인 맑음이다. 그래서 양희은의 맑음은 부드럽지 않고 거세다. 힘있고 맑은 소리는 멀리 간다. 양희은의 힘과 맑음이 합쳐져서 때때로 건전가요풍의 창법을 이루는 대목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양희은의 목소리는 멀리 가서, 이른바 삶의 전망이라고 할 만한 것에 닿는다. 그때 양희은의 목소리는 세상을 열어젖히는데, 거기가 양희은의 가장 좋은 순간들이다. 그때 양희은은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의 질감으로 거칠고 싱그럽다. 목소리를 통해서 내가 체험한 양희은의 여성성은 여자인 생명의 외로움을 감당해내기를 버거워하면서도 힘겹게 감당해낸다. 그 여성성은 생명이 아닌 것들에 의해서 이미 정형화되고 이미 여성화되어 버린 아름다움을 사절하고 있다. 사랑을 노래할 때, 양희은의 못로리는 그리움이나 기다림을 노래하기보다는 사랑과 더불어 와야 할 자유를 노래한다. 그래서 양희은 목소리의 쓸쓸함은 애절하지 않고 강력하다. (258~259쪽)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는 일도 그 늙음과 견딤 속에서만 가능하다. 삶은 그림보다 무겁고, 그림보다 절박하고, 그림보다 힘들다. 그리고 삶은 그림보다 초라하다. 그림보다 꾀죄죄하고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 삶의 올바른 풍경이다. (279~280쪽)


 

본 게시물은 도서를 읽고, 개인적인 소감과 비평을 기록하고자 하는 비영리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해당 글이 저자 또는 관련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의사는 없으며, 만일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면 자체적으로 수정, 블라인드, 삭제 처리하겠으니 상세히 알려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