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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제목 - 밥벌이의 지겨움
저자 - 김훈

출판 - 생각의 나무
분량 - 267
ISBN- 9788901095714


소설가 김훈.. 아마도 남한산성으로 처음 읽었고, 칼의 노래 정도를 읽었을까 ? 약간은 건조한 듯한 문체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는 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매력적인 그의 글이 현재 인기인 것은 아마도, 현실에 기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영화나 연극, 드라마로 만나는 대부분의 매력적인 스토리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내게 발생하거나 내가 경험하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 (물론 아예 없지는 않지요.) 을 생각해보면, 그의 글들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해지지 않는다던지, 이렇게 살고 싶지만, 잠에서 깨면 아주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는 있지만, 아주 재미있지는 않은 글이 아마도 저자가 인기를 갖는 비결이라면 비결일 겁니다. 즉,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광팬은 거의 없는 류의...

이 책은, 저자가 출판한 몇 편의 에세이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일 겁니다. 우선 밥벌이나는 제목이 가져다 주는 친근함과 지겨움이 책을 선뜻 집어들게 한다는 점이나, 다른 책들에서 일부 문구들이 제법 발견된다는 점 등이 이 책을 선택하게 하는 요소일 겁니다. 밥 냄새의 비릿함을 맡게 되면, 이 책을 생각나게 하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책 제목처럼 밥벌이에 대해서, 그리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편의 에세이에 그 제목이 실렸을 뿐이며, 저자가 생각하는 또는 생활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그저 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인가 별다른 감동도, 별다른 재미도 크게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읽어가면서는...

오히려, 책 말미에 소개되고 있는 저자의 인터뷰 내용은 생각보다 재미나게 읽었다 싶습니다. 저자에 대해서 가장 잘 소개하고 있지 않나 싶구요. 아래 인용된 몇 구절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예술가적인 특별함이나, 독특함들 보다는 그저 옆집의 관리자급 직장인을 보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매우 치열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텍스트란 수단을 통해서 매우 건조(?)하게 표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의 생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뿐입니다.

출판한 책들이 (특히, 소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오히려 기자로서 그가 쓴 기사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 뿐이군요. 이미 구매한 책에 다른 에세이 집도 한 권 있으니, 것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차분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나는 1960년대의 그 설화적인 가난 속에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나는 김팔봉이나 임화 같은 선배들의 책을 읽고 그분들의 생애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친일과 항일을 파행적으로 거듭해가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당대의 절망에 좌충우돌하던 그분들의 생애를 읽으면서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비극성에 전율했다. 나는 당대ㅏ의 모순에 짓밟히고 또 일어서고 또 짓밟히는 그분들의 궤적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전율했고, 삶의 비극 앞에서 경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경건성이 무력한 것으로 폄하되어도 하는 수 없다. (105쪽)

돌에 온도를 가하면 돌 속의 쇠는 분리돼 흘러나온다. 그래서 용광로는 여러 원소들을 그 안에 가두고 뒤섞어서 새로운 문명의 소재를 빚어내는 자궁처럼 보인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는 불의 힘으로 물렁물렁한 흙을 굳게 하는데, 포스코의 용광로는 딱딱한 쇠를 물처럼 흐르게 한다. 도자기 가마 안에서 흙에 고온을 가하면, 수억 년 동안 흙 속에 숨어 있던 색깔이 인간 앞에 드러난다. 이것이 고려청자나 이조백자, 또는 막사발의 색깔이다. (132쪽)

암벽등반가들의 자일은 톱과 세컨드를 연결시킨다. 세컨드는 톱의 뒤를 바짝 따라붙으면서 안전 위치를 확보한다. 세컨드는 톱과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톱의 형편을 알고 있다. 톱은 세컨드와 연결된 자일에 기대서 비로소 길없는 암벽 위로 길을 더듬어낼 수 있다. 자일은 톰의 뒤로 늘어져 있거, 가야 할 길은 톱의 앞으로 뻗어 있다. 뒤로 늘어진 밧줄이 톱을 앞으로 밀어준다. 만일 톱이 추락하더라도 톱은 세컨드와의 거리만큼만 추락한다. 추락하는 톱은 이제 안전 위치를 확보한 세컨드의 자일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167쪽)

가을에는 바람의 소리가 구석구석 들린다. 귀가 밝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숲을 흔들 때, 소리를 내고 있는 쪽이 바람인지 숲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이런 분별은 대체로 무가치하다. 그것을 굳이 분별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은 바람이 숲을 흔드는 소리를 바람소리라고 한다. 바람소리는 바람의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세상을 스치는 소리다. (188쪽)

나는 이 느낌을 문장에서 먼저 받았다. 문학담당 기자일 때 모델이 될 만한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틈틈이 읽었는데, 김훈의 글은 탁월했다. '아, 기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구나' 싶을 만큼 낯설기도 했다. 그의 기사는 무지 꼼꼼한데도 독자에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문장은 자연스런 대와가 아니라 치밀한 독백이었다. 기자의 역할이 현실과 독자를 연결하는 거라면, 마땅히 기사는 '현실을 얼마나 잘 옮겼는가'와 '기사로 얼마나 잘 전했는가' 모두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당시 내 소견으로 김훈의 기사는 현실을 기사로 옮기는 데 사력을 다한 글처럼 보였다. 제대로 옮기기만 하면 전달은 되기 마련이라고 확신할 때 기자는 독자라는 하향 평준화의 관념에 대해 퉁명스러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제대로 옮기면 제대로 읽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처럼 언어를 비틀어도 따라가기 어려운 그 많은 세상의 곡선을 어떻게 각진 팩트(fact)로 옮겨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 문제를 노동으로 해결한다. 얽히고설킨 세상의 진실이 팩트로 그려질 때까지 조각이 맞지 않는 언어의 레고 게임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 나는 그의 글을 그렇게 이해했다. (243쪽)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소설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오래 들어앉아서 책읽는 게 전부다 보니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현실감없는 인간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에서, 그건 글 쓰는 데도 위기니까,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장이 기자밖에 없고, 이왕 기자를 할 바에는 경찰 출입기자를 하자 그렇게 된 거다. 그러고 며칠 만에 경찰기자가 돼버렸다. 이제 한 4개월 됐나..... 다시 현장에 나와보니 삶의 바닥은 지극히 난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수많은 욕망과 생각의 차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무수한 측면과 측면들이 저마다 정의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는 근원적 문제보다 존중과 타협이 중요하다. 그 어느 것도 절대 선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절대 악으로 반박될 수도 없는 나름의 사연과 치열함이 현장을 복잡하게 만든다. (246~247쪽)

체험이 다 소설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극히 일부가 소설에 반영된다. 현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언어와 관념에 내가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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