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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역사사용설명서 - 마거릿 맥밀런

제목 - 역사사용설명서
저자 - 마거릿 맥밀런

출판 - 공존
분량 - 287
ISBN- 9788995894583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이나 호기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 역사라는 부분입니다. 워낙 넓은 영역인지라 그 중에 어디다라고 찝어내기도 힘듭니마나, 어쨌거나 지나간 사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거나 해석한 글들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의 이 책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판매되는 도서들 가운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독서광들의 입문서들이 있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구체적인 과거의 사건과 사고를 언급하고 있다기 보다는 과연 과거의 사실들이 현재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또는 영향을 주게끔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 세계의 시대적 상황들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국)들이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이나 사실들이 Fact 그대로 전달되거나 이용된다기 보다는 그 행위의 주체들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이용/오용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현실의 이해관계가 투영된 역사가 현재 우리가 보고있는 것들이라는 얘기입니다. 아예 처음듣는 류의 주장은 아닌지라, 읽기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과연 나는 시대를 또는 사건/사고들에 대한 해석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시대를 사는 한 개인 관점에서도 역시, 이해관계와 입장이 존재하는 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개인 입장에서의 필터링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겠지만 말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파악하고, 이해할 때 보다 현명한 상황판단 및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번쯤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저자가 민족주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부분을 보다 보면, 나나 우리 주변의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오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의문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그럴만큼의 충분한 효용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참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가끔 술 한잔 먹으면 하는 말인데.. 세상은 사기로 가득 차 있다..)

내 눈 앞에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배경을 파악해보고 또 그 이해관계를 추정해보는 등.. 웬지 너무 빡빡한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역사를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과거의 교훈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충분한 의미를 갖는 좋은 책이라고 판단됩니다.

1920년대에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브박스는 우리가 우리 사회의 과거에 대해 확실하게 안다고 여기는 것들을 "집단 기억"이라는 용어로 명명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일반적으로 집단 기억은, 적어도 중요한 집단 기억은 집단에 관한 변함없거나 근본적인 몇 가지 진실을, 대개 비극적 진실을 표현한다고 볼수 있다."
(중략)
집단 기억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더 관련이 깊다. 왜냐하면 집단 기억은 집단의 자기 인식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무엇인지는 논쟁과 논란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종종 그런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런 논쟁과 논란 속에서 모리스 알브박스의 말처럼 "집단의 과거 속 주요 상징에 관한 서로 상반된 설명들과, '과거와 집단성의 관계'가 집단의 현재를 재정의하기 위해 논의되고 협의된다." (73-74쪽)
이데올로기가 역사에 기대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수중에서 과거는 예언이 된다. 독실한 종교인들이 이미 고통을 받았을지 모르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지 모르지만, 역사는 예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나 파시즘 같은 비종교적 이데올로기든, 다양한 종교의 근본주의 같은 종교적 이데올로기든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놀랄 만큼 단순하고 포괄적이다. 모든 사건이 웅장한 설명에 들어맞고 모든 것이 설명된다. (96쪽)
역사는 민족주의를 부채질한다. 역사는 집단 기억을 형성함으로써 민족의 생성에 일조한다. 민족의 위대한 업적을 함께 찬양하고 패배를 함께 슬퍼함으로써 민족을 지탱하고 육성한다. 역사가 과거로 많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일수록, 민족은 더 견고하고 영속적으로 보이고 그 민족의 주장도 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초기 고전을 저술한 19세기 프랑스 사상가 에르네스트 르낭은 민족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혈통, 지리, 언어, 종교같은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민족이란 기존의 희생자들과 미래에 양산될 희생자들에 대한 감정에 의해 생성된 거대한 결속이다."
그를 비평한 혹자는 이런 표현을 좋아했다.
"민족이란 과거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이웃에 대한 미움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집단이다."
르낭은 민족이 구성원들의 동의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았다.
"개체의 존재가 끊임없는 생명 확인에 달려 있듯, 민족의 존재는 매일의 투표에 달려 있다."
(121-122쪽)
역사는 너무나 자주 갈들을 일으키긴 했지만 화해를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칠레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목적은 과거를 그 이면까지 모두 드러냄으로써 진보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른 모든 것은 배제하고 과거의 고통이나 과거의 악행만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인정하고 그 의미를 평가하려는 것이다. (200쪽)
역사는 우리가 현명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역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넌지시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선명한 청사진 따위는 역사 속에 없다. 각각의 역사적 사건은 여러 요인, 사람, 연대가 얽히고설킨 유일무이한 집합체이다.
그래도 우리는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약간의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또는 일어나지 않을지에 대한 경고도 약간 들을 수 있더. 물론 우리의 시야를 가급적 넓게 유지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225쪽)
"역사의 가장 유용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틀렸거나 불명예스러운 목표를 과거 세대들이 얼마나 열심히 정직하고 고통스럽게 추구했는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 - 존 케리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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