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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제목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저자 - 장 지글러

출판 - 갈라파고스
분량 - 201
ISBN- 9788990809179


많은 글이나 언론(?)에서 추천되는 책이기도 하며, 필독서로 인정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기회에 이 책을 읽고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 입장에서 구매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 [탐욕의 시대]를 이미 읽어봤던 바, 책이 담고 있는 근본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만, 저자와 저자의 아이가 상호 대화하는 방식으로 현 지구상에서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국가, 민족,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과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글의 형식 자체가 아이에게 설명하는 식이기 때문에 읽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매우 정확하고 구제적인 사실이나 정황에 대해서는 언급되는데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구체적인 사실과 좀더 폭넑은 접근을 원하신다면, 위에 언급한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저자는, 현존하는 지구의 각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아 현상을 여러 사례들을 들어 정확하게 설명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함으로써, 각 현상의 원인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기아라고 해도 여러 형태가 있는건가요?
그래. FAO는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하고 있어. 대력 설명하자면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를 말한단다. 이를테면 가뭄이나 허리케인이 덥쳐 마을과 경작지, 도로, 수원지가 파괴되거나, 혹은 전쟁으로 집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상점들이 파괴되고, 다리가 폭파되기도 하지. 그러면 갑작스럽게 식량이 바닥나고 수백만의 인구가 다음 날이면 금세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거야.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이 재빨리 미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지.
그리고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해. 그 나라의 경제발전이 더딘 데 따른 생산력 저조, 급수설비나 도로 같은 인프라의 미정비, 혹은 주민 다수의 극도의 빈곤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단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비타민 결핍이나 단백질 부족에 따른 소아 영양실조 등의 다양한 질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게 되지.
그러니까 '구조적 기아'는 간단히 말해서 외부적인 재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란다. (48-49쪽)

특히, 저자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조적 기아에 대해서 포커싱하고 있으며, 이는 대상 국가나 민족을 지배하는 경제적/정치적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찌 보면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대한민국 역시도 그리 벗어나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신자유주의의 팽창을 통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먼 나라의 어떤 소식이 이 나라의 내일 결정하기도 하므로,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닌 것이지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어로서의 저자의 관점과 활동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보낼 수 밖에 없으며, 현재의 우리가, 책에서 언급된 - 그러난 잘은 알지 못하는 - 상황에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더군요. 명확한 해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구요. 일단 1차적으로, 사실을 명확하게 아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의 인식 범위를 넓고 깊게 하는 것, 그리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정도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마음 아픔이나 아쉬움 등의 정서적인 요인들을 이 책을 덮고 다른 책을 드는 순간 사라지게 되는 모양입니다. 일단, 내가 먹고 사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아주 간사한 이기심의 발로라고나 할까요. 나와 내 가족의 문제이기보다는 먼 나라 잘 모르는 이들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가벼움에 대해 반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53쪽)
이런 숫자의 배후에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가 존재한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소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경제적.이념적.학문적.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
금융과두제가 다수의 운명을 지배하는 가운데, 익명의 희생자들은 무기력하게 장기질환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런 불평등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오로지 사회계급 구조와 차별 이데올로기. 그리고 폭력으로 지켜지는 특권에 기초한다. (162쪽)

저자는 이 책에서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아 접근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인도적인 감정적인 호소 정도에 다름 아닙니다. 물론, 저자 스스로는 매우 진보적이고 왕성한 활동가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책의 성격상 그렇게 담아낼 수 있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히려 책 뒤에 덧붙여진 각종 후기나 인용 자료에 좀더 논리적인 문제 접근과 해결 방안 또는 반성 등이 언급되어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정치/경제/사회적 이슈가 연일 터지고 있는 한국사회를 돌아보더라도 충분히 곱씹어야 하는 내용을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 절대선과 절대악은 별로 없다. 대부분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본질을 규정하느냐에 따라 긍정되거나 부정된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지니는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세 가지만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활동의 제약을 최소화해 자유롭게 시장 원리에 따라 이윤을 추구함으로써 투여한 자본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부의 창출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둘째, 시장의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모든 경제주체가 긴장하며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함으로써 기능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셋째, '욕망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성취욕을 자극하여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 본능이나 이기심을 자극하여 이루고자 하는 에너지를 더 많이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점도 매우 많다. 세 가지 정도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의 전제가 잘못되어 그 개념과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모든 간섭을 없애고 자유를 줄 테니 알아서 마음껏 하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조건이 다른데 알아서 하라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중략)
둘째, 지나친 경쟁주의로 치달으며 약육강식의 냉혹한 질서가 자리 잡아서 다수의 약자들이 소외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시장으로 내몰며 자유롭게 벌어먹으라고 하므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데 경쟁의 조건이 처음부터 불공평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중략)
셋째, 자본의 욕망이 끝없이 확대되어 불필요한 영역들까지 시장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간의 모든 삶에서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시장논리가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다 보니 문화, 교육, 예술 등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영역들도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정책을 만든다. 이는 삶의 체계를 건조하게 만들며 인류문화를 황폐화시킨다. (194-196쪽)
여기서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결국 경쟁을 피하며 보신주의에 빠지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보적 활동가들이 깊이 고민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조리하게 조장되는 경쟁의 모순을 뛰어넘어 창조적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자는 더 본질적인 목표가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구체적인 담론과 기획물로서 제시되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의 충정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끔은 일단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비판'이라는 형식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설령 그런 경우가 아닌 진정한 비판일지라도 이제는 모순을 파헤치거나 혁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변혁을 이루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197-198쪽)

이런 책을 읽으면 웬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내용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읽고 행동하지 못하는 읽는이의 반성과 후회와 아쉬움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 큰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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