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1. 종이책

[서평]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파블로 네루다

본 게시물은 도서를 읽고, 개인적인 소감과 비평을 기록하고자 하는 비영리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해당 글이 저자 또는 관련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의사는 없으며, 만일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면 자체적으로 수정, 블라인드, 삭제 처리하겠으니 상세히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제목 -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라
저자 - 파블로 네루다

출판 - 민음사
분량 - 537
ISBN- 9788937472039

---

제가 네루다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아마도 시인 김남주의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시인 김남주가 선정한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의 시들로 구성된 책이었는데 외국 시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마도 그 책에서 몇 편의 시들이 가슴 깊이 새겨지고는 했는데, 이제는 기억도 가물 가물하니,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그리 믿을 만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다만, 아.. 네루다라는 칠레의 시인이 있었다라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메리카의 인물들이 한국인에게 주는 인상은 일면 매우 동질적이라는 측면과 일면 서양의 한 끄트머리라는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수백년간의 식민지 경험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더 깊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스페인어와 포르투칼어를 사용하며, 유럽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측면에서는 또 꽤나 멀어 보입니다.

현존하는 브라질의 룰라, 칠레의 아옌데, 체게바라, 카스트로와 같은 민중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책이나 영화, 다큐를 통해서 접하는 동양인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신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이야 한.칠레간 FTA를 통해서 칠레산 와인을 매우 저렴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정도가 근접한 소식이 아닌가 합니다.

칠레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리 아는 바는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길쭉한 나라 (사실 러시아가 더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남미의 태평양 연안을 모조리 갖고 있으며, 끝으로는 남극에 다다르기까지.. 어쩌면 지형적으로는 가장 어렵게 구성된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후대도 다양하고, 사람들도 다양할텐데,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죠.. 정말 정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쪽은 안데스 산맥, 한쪽은 태평양, 윗쪽은 사막과 광산, 아랫쪽은 남극이니...

네루다에 대한 소개는 책을 통해서 접하실수도 있겠으나, 아래의 네이버 캐스팅으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858)

시인 네루다는 참 파란만장하다 싶은 삶을 살았습니다. 책을 통해 언급되고 있는 나라들도 수십개에 달하고, 이 시인이 인연을 맺고 있었던 사람들도 참 다양하고도 넓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수많은 인물들과의 직간접적인 교류와 경험 - 스탈린, 체게바라, 아옌데, 카스트로, 피카소 등 문인들을 제외한 사람들만으로도, 다양한 국가에서의 생활 - 버마, 싱가폴, 인도네시아, 인도,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미국, 쿠바,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스웨덴 등등 - 은 결국 민중을 사랑하는 시로 승화되었나 봅니다.

이 책은 시인 네루다가 죽기 전까지 직접 저술한 자서전이며, 회고록이라 합니다. 칠레 민중들 뿐만 아니라, 남미의 수많은 지도자와 민중들에게 사람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고 했습니다. 매년 문학상 발표 즈음에 우리 고은 시인이 언급되는 것처럼, 네루다가 살던 시기에도 매우 큰 반향이었나 봅니다. 시인 네루다의 회고록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들에 거의 사진 삽화나 저자의 시가 실려있지 않은 것이 약간은 의문스럽지만, 이 역시도 저자가 의도한게 하닌가 싶습니다.

시인으로의 네루다를 이해할 수 있었던 몇몇 가지 글들을 발췌해봤습니다.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127쪽)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1945년 7월 15일, 나는 칠레 공산당에 가입했다. (263쪽)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300쪽)

다시 말해서,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그런데 시인을 위한 시집 출판은 나를 자극하거나 유혹하거나 도발하지도 못한다. 그럴 바에는 출판사고 책이고 모두 버리고 파도나 바위와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다. 시는 이미 독자와 관계가 끊어졌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읇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386쪽)


전기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잘 알기 위함입니다. 그 사람의 업적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 업적들은 결국 그 사람이 영위해온 삶이나 생활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네루다의 시들을 한번 찾아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