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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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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저자 - 공지영

출판 - 한겨레출판
분량 - 255P

ISBN-
9788984313170

공지영씨의 새 책이다. 아마도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출판한 모양이다. 읽으려고 쌓아둔 책이 많이 있지만, 이 책은 순서를 어기면서 바로 읽어버렸다. 어쩌면, 작가에 대한 조그만 신뢰 하나가 책 읽는 순서에 영향을 주는가보다.

이 책은 가벼운 책이다. 제목 그대로 작가의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그야말로 가볍게 써낸 글들이다. 읽는이 역시 별다른 부담없이 가볍게 가볍게 읽어가버리면 된다. 아주 큰 감동이나 느낌이나, 실망이나 머 이런 기대는 금물이다. 작가 스스로 아예 가벼움을 전제로 쓴 글들이니 독자도 그렇게 읽어줘야 어울릴 것 같다.

물론, 글 내용 가운데에는 한번쯤 갸웃거리게 하거나 생각하게 하는 주제가 없지 않으나, 이것도 아주 짧게 생각하는게 좋겠다 싶다. 다른 생각없이 이어폰 하나 끼고 읽는게 제일 어울린다.

공지영씨가 쓴 글들이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무얼까 ? 아마도 작가의 일상으로부터 비롯되는 진실성에 그 비결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어떤 큰 사상과 주장을 담고 있지는 않으나, 독자 역시 겪을지도 모르는 소박한 일상들속에서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이야기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 결코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들일 것이다.

가벼운 글들이지만, 순간 순간 기발함이 돋보이는 글들도 있다. 예를 들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그러면 번개에 맞을 확률을 제어하기 위해 모든 빌딩에 피뢰침을 달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반문한다. 흠... 나 역시 철렁했다.

다음에는 어떤 글들을 만날 수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p84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의 80퍼센트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나머지 20퍼센트 중에서도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며 (그러니까 내일 산에 가는데 추우면 어떻게 하지?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 뭐 이런 것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2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p98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의 차이 중 가장 뚜렷한 것은 살아 있는 것은 대개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게 화분이라면 필요 없는 누런 이파리나, 그게 꽃이라면 시들거나 모양이 약간 이상한 꽃 이파리들을 달고 있다는 거다. 반대로 죽어 있는 것들, 그러니까 모조품들은 완벽하게 싱싱하고, 완벽하게 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p170
나는 힘이 들 때마다 친구의 이 말을 떠올리곤 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마음을 조절하려고 애쓰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라는 걸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처음에는 이것이 갑자기 마라톤을 뛰려는 것처럼 어림도 없는 일로 보인다. 그런데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도 어찌됐든 그래 보려고 애쓰면 신기하게도 근육이 생기듯이 조금씩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p171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상처를 받고, 생명이 가득 찰수록 상처는 깊고 선명하다. 새싹과 낙엽에 손톱자국을 내본다면 누가 더 상처를 받을까. 아기의 볼을 꼬집어보고 노인의 볼을 꼬집어보면 누구의 볼에 상처가 더 깊이 남을까?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위해 몸을 바꾸어야 하는 본질을 가졌기에 자신을 굳혀버리지 않고 불완전하게 놓아둔다. 이 틈으로 상처는 파고든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일수록 불완전하고 상처는 자주 파고들며 생명의 본질이 연한 것이기에 상처는 더 깊다.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가볍게 읽으라고 저자가 말한다. 그러니 가볍게 읽으라.. 부담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