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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저자 - 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 출판 - 시대의창 분량 - 235P ISBN- 9788989229490 ---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반미적인 인물 중 하나, 유대인이면서 가장 반유대적인 인물 중 하나.. 간혹 방송을 통해서 접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 사람이 어떤 주장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바 없다. (이 부분에서 쪽팔려지는 것이다. 어떤 인물에 대해서는 막연히 알기는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주장을 했었는지는 모른다는 이 수박 겉핥기식 지식이라는 가벼움..)
사실, 그런 측면에서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여러권의 촘스키의 책들을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읽고자 선택한 책이다. 이외의 책들도 많이 있겠으나 첫 단추를 끼우고자 가급적 개괄적이고 가벼운(?) 놈으로 골라잡았다.
알고보니 촘스키는 언어학자였다. 그런 생각은 거의 못했었는데,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중 한명이란다. 그 분야에서 MIT 교수로 재직중이기도 하다. 1928년생인 그는 현재는 여든을 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촘스키는 사회비평가이다. 그리고 놀랄만한 통찰을 보여준다. 책 전반에 걸쳐가 노학자가 주장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접근과 이해, 그리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들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언론을 통해서 노출되는 것, 권력을 가진 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본질을 숨기고 있는 것이며, 어떤 목적에 의한 것인지를 가감없이 아주 솔직히 이야기한다. 80평생을 사회비평가이자, 운동가로 살아온 노학자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프랑스 언론인이 노암 촘스키와 나눈 2시간 동안의 대담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 만큼 매우 체계적인 이론이나 주장의 전개는 볼 수 없으나, 노학자가 갖고 있는 전반적인 사상과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다. 사회 전반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과 시선을 제공하는 노학자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앞으로 노학자의 책들을 하나 둘 읽어봐야겠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수법과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타의 수법까지 동원한 공개적이고 의도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p28)
'저명한 지식인'이 곧 진정한 지식인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명한 지식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 그들만의 고유한 권력체계 내에서 '책임 있는 지식인'이란 직함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서구 사회에서 그들은 스스로 '책임 있는 지식인'이라 자처합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그들을 '테크노크라트 지식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에 분란의 씨앗을 뿌리는 '무책임한 지식인', 즉 '반체제적 지식인'과 구분하겠다고 말입니다. (p31)
기업은 독재적 성격을 띤 기관입니다. 현대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기적 존재가 개인에 앞선 특권을 갖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운영됩니다. 그런데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두 가지 형태의 독재체제, 즉 볼셰비키즘과 파시즘도 바로 이런 원칙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요컨대 이 셋은 개인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한 전통 자유주의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p57)
다보스에 초청을 받는다면 가시겠습니까?
- 천만에요.
왜요?
- 그 사람들이 으스대는 꼴을 내가 왜 봐야 합니까?
그래도 그들을 만나 설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 그들이 내 말에 설득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자본주의부터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권력층에 맞서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권력층과의 투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둘째로 투쟁하려 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일원이기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내가 그들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습니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현상을 두고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p66)
기업계 지도자들은 "정신과 마음을 얻기 위한 영원한 전투"에 전력투구하고,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사상을 주입시켜야 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사회민주주의 사상과 다소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기업의 지배가 위협받자, 선전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기관과 홍보기관이 총동원되었습니다. 기업계 지도자의 표현대로 '개똥철학' 즉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p69)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p83)
1971년에는 국가 간에 거래된 자본의 90퍼센트가 실물 경제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약 10퍼센트 정도만 투기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가 간에 거래되는 자본의 95퍼센트 이상이 투기적 성격을 띤 것으로 추정됩니다. 뒤집어 말하면 실물 경제에 관련된 자본 거래는 미미하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이런 투기 자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발력을 갖고 있습니다. (p86)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래서 '연대 국가자본주의 Alliance State Capitalism' 혹은 '기업 중상주의 Corporate Mercantilism' 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꼭 들어맞는 명칭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애덤 스미스 Adam Smith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던 학자들이 요즘의 자본주의를 본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자유무역론은 "노동은 이동 가능하지만 자본은 이동 가능하지 않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데이비드 리카도 David Ricardo 는 "자본은 이동되지 않는다"라는 원칙 하에 경제를 설명합니다.. (중략).. 적어도 이론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노동은 이동되지 않습니다. 수세기 전부터 노동이 이동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듭니다. (p88)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aynard Kaynes의 이론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장입니다. 금융시장은 집단행동, 즉 부화뇌동적 특징을 띱니다. 그래서 케인즈는 금융시장을 미인경연대회에 비유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경연자들을 개인적 판단에 따라 채점하지 않고, 다른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고려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곳이 바로 미인경연대회가 아닙니까 ! 금융시장과 투기시장도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투자 방향을 짐작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 지수가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합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대폭락이 일어나고, 거꾸로 급격히 상승합니다. 이처럼 지수가 등락을 거듭하며 금융시장은 나날이 새로운 기록을 만듭니다. 달리 말하면 일정한 간격으로 두고 금융시장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며 재앙이 닥칩니다. (p92-93)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업계는 시장을 자율에 맡겨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소유한 몫만큼의 권리를 행사하려 합니다. 가령 당신에게 25달러가 있다면 그 25달러만큼 시장에서 당신의 위치를 갖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에 없는 사람, 즉 미래 세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결과를 짊어져야 할 사람이 그들입니다. (p94)
이런 자본의 압도적 다수가 투기성을 띱니다. 독일 국민차회사인 폴크스바겐이 브라질에 공장을 짓는 것처럼 외국에 직접 투자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투자되는 자본은 소규모에 불과합니다. 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 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입니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이런 민영화는 대체로 부패한 정보에서 주로 시행됩니다. (p109)
모든 것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거의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입니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국민은 투표권을 행사하며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줄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이런 권리를 행사한 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소비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요리나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국가를 성가시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p149)
우리 사회는 줄곧 변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관련된 개념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구조와 계급구조는 변했지만 특정집단의 이해 관계, 지배 관계, 사회의 계층구조, 의사결정의 단계 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런 모슨이 계급간의 갈들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p163)
워터게이트 사건에서는 그 대상이 권력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블랙 리스트에 오른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IBM의 최고 경영자, 케네디와 존슨 시절에 국가안보 책임자를 지낸 사람까지 블랙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무관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누구도 감히 권력자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못합니다. 가령 당신이 권력자들일 비난한다면 그들이 거센 반격을 가하면서 당신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결국 닉슨이 비도덕적인 인물로 낙인찍히면서 탄핵까지 맏은 것은, 그 이전부터 권력자들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닉슨의 그런 용기에 마음속으로 성원을 보냈습니다. (p190-191)
정보 Information는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정보라 표현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언론은 광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근본적 한계를 갖습니다. 따라서 제도적 관점에서 언론은 민간 기업들에 시청자를 파는 민간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 관계가 밀접히 연결된 국가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한계 내에서도 언론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직업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p199)
내 생각에, 현재의 인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p201)
어려운 단어들을 골라 쓰며 복잡하게 말해야 지식인 대접을 받으면서 특권층처럼 군림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지식인들이 회의에 초대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강연에 알맹이가 있습니까 ? 바로 이런 현상이 문제입니다. 쉬운 말로도 더 깊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