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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안정효

제목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저자 - 안정효

출판 - 모멘토
분량 - 530쪽
ISBN- 9788991136120


책을 좋아하는 사람 즉,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관심을 갖는 주제 중 하나가 글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글들을 접하다 보면, 활자나 문장이란 것이 낯설지 않아서인지 약간씩 끄적거리기도 하고 - 마치 이렇게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찝쩍대는 것처럼 - 마음 먹고 글쓰기와 관련된 책이나 강좌를 접하기도 하더군요. 제 경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해서인지, 그저 읽기와 이 정도 블로깅에 만족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란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저자인 안정효씨는 [하얀전쟁]이나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웃 키드의 생애] 등과 같이 영화화된 소설을 쓴 분이시죠. 다만, 제가 이 분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또 영화를 제대로 감상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무어라 평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순간 드는 느낌은 아.. 이게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일찌감치 글쓰기는 포기하자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TV드라마에 나오는 작가들의 어줍잖은 행동이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긴,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직업이 그 직업을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죠.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아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만...)

운동선수가 충분한 기본기를 갖추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수많은 경쟁자를 이기고 능력있는 선수가 되는 것처럼 글쓰는 사람들 역시 충분히 준비하고,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읽히기 위해 쓰여지는 글들이기에, 글쓰는 주체가 얼마나 갈고 다듬어야 하는지를 낱낱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역시나 알게 합니다. 천재적인 소설가, 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것이죠. 천재성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원의 적절한 투자에 따른 것임을.. 이유있는 천재성인 거죠..

저자는 소재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단락 하나, 스토리의 구성과 전개, 소재의 조사와 선택, 쓰고 읽고 고치고, 또 고치는 수많은 글쓰기 과정에서 글쓰는 이들이 가져야할 태도와 자세, 그리고 방법들을 아주 세밀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글쓰기 교육과정을 듣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제일 못하는 것이, 한번 쓴 글을 다시 읽고, 고치고 또 고치고, 지우고, 다듬고 하는 일인데, 저자는 이 과정을 정말 정말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정말 못하고 있는게 맞더군요.)

글을 쓰는 일이나, 인생을 사는 일이나, 내가 맡은 일을 잘 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해줍니다. 또한, 이 글에는 저자가 알고 있는 또는 좋아하는 수많은 작가의 글 샘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읽다보면, 한번쯤 저 책도 읽어야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글쓰는 이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를 정리해서 이와 같이 책을 묶어낸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과 자신감이 동반되는 일이라 봅니다. 훌륭한 작가의 훌륭한 책이라는 평가에 한 표 던져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아니 어쩌면 의도된 부분일 것 같은데.. 이 책은 주로 글쓰는 이가 어떻게(How) 글을 써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을 또는 무엇(What)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약간은 정치적일 수도 충분히 논란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 역시 시대가 지나고 관점이 바뀌면 변화하는 거라고 판단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지도 않으면서,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게으름을 반성해봅니다.

무슨 정성과 어떤 공을 들여야 하는지도 아직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어떤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과 도움말을 새기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야 한다. 나에게 원칙이 없으면 선택의 여지도 없고, 그래서 타인들의 원칙을 노예처럼 따르기만 할 따름이다.
먼저 나에게 원칙이 있어야 타인의 원칙을 만날 때 비판하고 취사선택할 능력이 생겨난다. 그래야 나 스스로 계속해서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낸다. 남이 글로 써놓은 원칙을 읽고 머리를 끄덕이며 무작정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엄마가 해주던 숙제에 익숙한 사람이다.
흉내는 결코 창조가 아니다. 남이 멋진 표현을 사용하면 그 맛을 음미하기만 하고, 훔쳐다 쓸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에 맞먹을 훌륭하고 좋은 표현을 생각해낼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래야 남이 한 말이나마 싱싱함을 유지한다. (24쪽)
따라서 기본적인 이해와 기초적인 훈련은 세상만사의 바탕을 이룬다.
겨우 몇 달이나 몇 년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젊은 가수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얘기를 많이 한다. 노래는 별로 부르지 않고 무대 위에서 주로 기계체조를 해서 눈길을 끄는 그들의 세대 교체가 빠른 이유를 노력은 많이 안하고 빛나는 성공만 바라는 젊은이들의 의식에서 찾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거의 어느 세대도 빠른 성공을 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박사상은 인생살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제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두 달 만에 성공을 거둘 만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두 달 만에 성공하게 마련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두 달 만에 세대 교체가 저절로 계속해서 반복된다.
나이를 먹으면 활동이 중단되는 운동선수보다는 가수의 활동 수행이 평균적으로 훨씬 짧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운동선수는 기초 훈련에 워낙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기초를 준비한 기간이 활동 기간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일단 습득한 기본적인 지식과 능력은,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더라도, 이른바 '지도자'의 기능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10년을 노력하여 성공을 거둔 사람은 10년 동안 그 결실을 맛본다. 두 달 만에 성공한 사람은 참된 즐거움을 두 달밖에 누리지 못한다....(생략) (46-47쪽)
단순하고 간결한 글은 저널리즘의 생명이다.
노래를 못하는 가수가 기계체조 춤으로 열심히 위장을 하듯, 예쁘장한 단어들만 나열해서는 힘찬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투수도 곡구(curveball)의 묘기보다는 정확한 직구를 우선 잘 던져야 하고, 문장은 세밀한 기교보다 튼튼한 단어의 선택에서 일차적인 승부가 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간결함이 재치의 정수(Brevity is the soul of wit.)"라고 했다.
튼튼한 힘은 또한 논리성에서도 나온다.
진리와 진실은 그 자체가 힘이기 때문이다.
진실과 논리는 아무런 꾸밈도 필요없다. 꾸밈은 오히려 거짓된 장식일 따름이다. 황금 장신구를 아무리 몸에 주렁주렁 매달아도 그런 황금은 인간 자신이 아니다. 장신구는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거짓이기 때문이다. (54쪽)
구성은 주제와 소재 두 겹으로 이루어진 기획이며, 여러 덩어리의 작은 소재를 하나씩 소화해 나가면서 독자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여러 개로 나뉜 이 작은 덩어리 하나를 장(chapter)이라고 한다.
장의 구성 방법은 단락 만들기와 같고, 그 기본은 문장 만들기와 같다. 문장은 하나의 독립된 개념을 담고, 단락은 하나의 기승전결을 담으며, 장은 하나의 단위 줄거리를 담아내는 짧은 단편(short short story)과 같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서 독자가 읽기에 지치고, 분위기 전환과 휴식이 필요할 때쯤에 장이 끝나게 된다... (생략) (218-219쪽)
남들이 가르쳐주는 해답을 외우는 시간 동안, 작가는 혼자서 생각해야 한다. 지능지수(IQ)를 측정하는 시험지를 어디서 몰래 훔쳐다가 문제의 답을 모조리 외운 다음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해도, 그 사람의 지능지수가 정말로 올라가지 않는다. 조기교육과 과외는 천재나 영재를 만들지 못한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알기보다, 늦게라도 좋으니 스스로 깊게 깨치는 배움이 필요하다. (320쪽)
글쓰기의 기본적인 도구는 언어이며, 작가는 어휘를 지배해야지, 화려한 어휘의 거짓된 매력에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낱단어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그 단어를 꼭 쓰기 위한 문장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잘라버려도 좋은 군더더기이다. 비만성 단어는 남들이 고치자고 덤비기 전에 스스로 찾아내어 잘라내고 살뺴기를 해야 한다.
단어의 사용법은 화려함이 아니라 논리성과 정확성이 기본이어야 한다. (363-364쪽)
한 작품을 오래 쓰면, 거기에는 젊은 시절의 총기와 감각 그리고 싱싱한 영감이 그대로 살아남은 채로, 경험과 지혜가 나중에 곁들여 함께한다. 모든 세대는 젋었을 때 힘차게 발달하고, 나이를 먹으면 경험을 되새겨 보다 높은 차원으로 성숙시킨다. 아직 젊어 알찬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의 글쓰기에는 줏대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젊어서 시를 쓰고, 장년에 소설을 쓰고, 늙어서 수필을 쓰라고 하는 모양이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작업이다. 작신의 글을 비관할 능력이 생기면 글쓰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5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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