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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언더그라운드 1, 2 - 무라카미 하루키

제목 - 언더그라운드 1,2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 문학동네
분량 - 733쪽, 333쪽
ISBN- 9788954613361, 9788954613378

이 책 참 특이합니다. 소설도 아니고, 르뽀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고.. 이런 류의 책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잘 감이 안옵니다.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좀 정리하자면,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5년 3월 2일 출근 시간 도쿄 지하철에서 일어난 독가스(사린) 살포 사건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들과의 인터뷰를 모은 글입니다. 물론, 보편적인 인터뷰와 사실 여러모로 다른 측면이 있으며, 상당한 분량이 되기 때문에 읽는이게는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1권 - 언더그라운드]는 피해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2권 - 약속된 장소]에서는 직접 가해자는 아니지만, 가해자들과 같은 공간에 존재했었던 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주로 싣고 있습니다. 인터뷰 방식 자체도 저자의 의견을 최소화하고, 대상자의 이야기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나 (아예 대상자의 확인을 거친 후 책에 싣는 방식), 순수하게 독가스 살포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만이 아닌, 대상자 자신의 삶과 생활 그리고, 그 사건 전후, 이후 극복 기간 등에 대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이 인상 깊습니다.

워낙에 헷갈린 여러 일본 지명, 역명, 인명 등이 혼재하는 지라 (등장인물이 그만큼 많다는 점이죠..)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습니다만, 작가는 결국 그 사건만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현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삶과 생활, 그 시간 그 지하철에 왜 있었어야 하는지부터 살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주체에 대해서는 아래 URL 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옴진리교 - http://ko.wikipedia.org/wiki/%EC%98%B4%EC%A7%84%EB%A6%AC%EA%B5%90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C%BF%84_%EC%A7%80%ED%95%98%EC%B2%A0_%EC%82%AC%EB%A6%B0_%EC%82%AC%EA%B1%B4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그리고 내 주변에서 항상 찾아볼 수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즉,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수 있는 엄청 자극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스토리들만 들어오다,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수많은 삶을 해당 사건을 배경으로, 그리고 그 관련인들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인터뷰 대상자별로 반복되는 얘기나 구성에 약간 지루한 면이 있지만, 결국 우리네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기도 합니다.

하루 하루를 직장에서 일터에서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하철을 꽉 메운, 우리 엄마, 아빠, 아들, 딸 들의 모습을 이처럼 편안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글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TV를 통해서 보여지는 인간극장류의 논픽션 역시도, 가장 평범하지는 않은 - 역경을 극복하거나, 고난을 헤쳐가는 - 이야기들로 포장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저자는 1995년에 일어난 그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가장 보펴적인 그 지하철을 탔던 많은 일반인들의 삶에 집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분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매우 드라마틱해져벼렀지만…

저는 이 책을 거의 순전히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글을 지하철에서 읽어가자니, 이것 역시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권의 하루키 서적을 읽었지만 -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좀 길게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 상세 상세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사건 후 한동안 각종 매스컴에는 지하철 사린사건과 옴진리교와 관련된 뉴스가 넘쳐났다. 텔레비전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에 관련된 정보를 거의 논스톱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신문, 각종 잡지, 주간지는 방대한 양의 페이지를 사건에 할애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거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1995년 3월 20일 아침에, 도쿄의 지하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이 바로 내가 품은 의문이었다. 아주 간단한 의문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때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기서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상세한 것까지, 심장의 고동에서 숨결의 리듬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 (그것은 나일수도 있었고 당신일 수도 있었다) 이 도쿄의 지하에서 이런 생각지도 않은 기묘한 사건에 갑자기 휘말려들었을 때, 과련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또는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만)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왜 그럴까? (696~670쪽)

시스템(고도관리사회)는 거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은 고통을 느끼게끔 개조한다.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질병'이며, 적합하게 만드는 것은 '치료'다. 이렇게 해서 개인은 자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파워 프로세스를 파괴당하고, 시스템이 강요하는 타율적 파워 프로세스에 포함되었다.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를 갈구하는 것은 시스템 내에서는 하나의 '질병'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7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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