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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유러피언 드림 - 제러미 리프킨

제목 - 유러피언 드림
저자 - 제러미 리프킨
출판 - 민음사
분량 - 550쪽
ISBN- 9788937425356

워낙 유명한 저자의 책이기도 하거니와, 전임 대통령이 읽던 책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부여하는 책입니다. 저 역시도 사둔 지는 제법 되었지만, 이제서야 읽게된 것은 다루고 있는 소재가 주는 압박이나, 책의 두께에 따른 머뭇거림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상당히 많은 내용과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리하자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20세기를 지배한 아메리칸 드림을 상속(?)받거나 또는 대신할 체제로 EU(유럽연합)를 지목하고 있으며, 이런 EU의 구성과 사상, 맥락 등을 유러피언 드림이란 형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 진행되었거나, 진행중인 EU의 각종 제도와 절차, 체계, 의미 등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작금의 시대를 풍미한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물론, EU라는 체제가 어떤 완성된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여전히 그 경계가 불분명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다른 현실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가장 유력할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물론,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겠으나,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건데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인지하건 하지 못하건 간에 말입니다.

사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EU는 그저 유럽의 여러 국가가 경제적 측면에서 연합한 조직이나 체제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렇게 출발한 것도 아니고, 왜 국경이나 종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유럽 국가들이 EU라는 연합체를 구성하게 된 것일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 책은 그런 이해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와 이슈들을 정치경제 측면에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으나 - 정작 마땅한 대안이나 시나리오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이해도 안되고 감동도 안되니… - 책을 읽다 보면, 아.. 이렇게도 접근이 가능하겠구나란 생각을 들게 합니다.

또한, 근대에 아메리칸 드림이 어떤 역할을 했고, 아메리카 합중국이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힘을 갖게 되었는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아메리칸 드림이 현재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매우 여러가지 관점에서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미국이란 강대국에 적정 수준에서 예속되어 있는 국가나 민족에게 반미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막연히 미국이란 체제를 비판하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20세기를 지배한 아메이칸 드림의 역할과 그 힘, 그리고 현재의 미국인들의 상황, 그 장단점 모두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의 시대에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지를 여러모로 생각하게끔 하는 책입니다.

현재,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 시장과 경제라는 틀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들임을 알게 하는데, 여전히 그 틀 안에 존재할 수 밖에 없기에, 제 자신이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라는 틀을 깰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는 계기는 되더군요. 스스로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어야 그 틀을 벗어나거나 깰 수 있기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끔 하는 책입니다.

읽기에 분명 부담스러운 책이었지만, 읽고나서 충분히 읽을만한 책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이 강력함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무제한적인 부 축적보다는 삶의 질에 기초한 문명에서는 현대의 발전을 가져온 물질적 바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평형 상태와 안정을 유지하는 세계 경제라는 것은 사실 매우 급진적인 제안이다.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전통적 방식을 거부할 뿐 아니라 역사를 꾸준한 물질적 발전으로 보는 사고방식 자체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평형 상태를 이루는 세계 경제의 목표는 재순환을 통해 자원을 채워줄 수 있는 자연의 능력과 인간의 생산 및 소비 사이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높은 질의 삶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지속 가능하고 평형을 이훈 경제는 무한한 물질적 진보만으로 규정되는 역사의 진정한 종말이다. (17쪽)

물론 현대 문화에서도 달력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중요성은 스케줄의 등장으로 크게 약화되었다. 스케줄은 시간 할당에서 달력보다 훨씬 큰 통제력을 갖는다. 달력은 1년 전체에 걸친 '매크로' 시간을 규제하는 반면 스케줄은 초, 분, 시간 등 '마이크로' 시간을 통제한다. 스케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다. 스케줄 문화에서는 미래가 과거와 단절되어 독립적인 시간 영역을 형성한다. 스케줄 문화는 과거사를 기념하지 않고 그 대신 미래를 계획하며, 과거를 되살리는 데 관심이 없고 미래를 조종하는 데 관심이 있다. 새로운 시간의 틀에서는 과거가 미래의 서막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제 행해진 일이 아니라 내일 행할 수 있는 일이다. (140쪽)

그렇다면 EU는 도대체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EU는 무대를 설치하고 대화를 유도하며 쇼를 감독하는 교섭 정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EU는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다. EU가 통일된 여권, 국기, 본부(수도) 등 국가의 외형적 상징들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가장 뛰어난 특징은 불확정성이다. 전통적인 민족국가는 국경 내부의 다양한 이해 관계들을 통합하고 동화하며 통일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EU는 그런 임무를 갖고 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EU의 역할은 일반적인 민족국가들의 역할과 정반대다. EU의 정치적 특징은 다양한 활동과 이해 관계의 흐름을 촉진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들을 조정하는 데 있다. (297쪽)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 죽음 본능에 갇혀 있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들은 과도하게 소비하며, 모든 욕구를 채우려 하고, 지구의 자원을 낭비한다. 미국인들은 무제한적 경제 성장을 중시하며, 강한 자에게 혜택을 주고, 약한 자에게 불리함을 준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자신이 원하고 또 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일으켰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국민'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지국의 자원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서글프게도 미국인들의 개인적인 이익 추구는 점차 순전한 이기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이 어느덧 죽음의 문화가 된 것이다. (489쪽)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미국에 대한 일부 비판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게 바로 미국의 현 주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에는 다른 면도 있다. 미국은 새로 오는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미국인들은 모든 인간이 삶의 또 다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불우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역경을 딛고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을 찬양한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또 자기가 한 일은 스스로 책임을 진다. 미국인들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미덕이 개인주의의 바로 그런 다른 면이다. 그런 책임 의식이 죽음 본능을 떨치고 나와 생명 본능을 감싸 안는다면 미국은 또 다시 세계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4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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