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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이책

[서평] 고민하는 힘 -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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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민하는 힘
저자 - 강상중

출판 - 사계절
분량 - P184
ISBN- 9788958283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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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들어와서 처음으로 선택한 책은 [고민하는 힘] 입니다. 이미 여러 분들로부터 또는 각종 언론들을 통해서 매우 좋은 책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제게 있어 2010년도는 아마도 또 다른 단계로의 진입이 예상되기도 하며,  일련의 긴장감과 함께 많은 고민을 병행해야 하기에, 어쩌면 가장 적절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했던가요.. 책을 읽어갈수록 참 좋은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차만 잠깐 살펴보면..

1. 지금을 살아간다는 고민
2. 나는 누구인가?
3.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4.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5. 청춘은 아름다운가?
6.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7.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8.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9.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10. 늙어서 '최강'이 되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매우 심각하고 무거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자는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빌려, 너무 무겁지 않게 일면은 편안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결론을 내려버리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소한 의견을 곁들여, 고민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가, 자신이 겪지 못한 일들에 대한 간접경험을 통해 배우거나, 자신보다 더 많은 고민과 학습을 한 저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의 이유라 할 때, 이 책은 독자들에게 독자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에 당당하게 맞서고 고민하라고 합니다. 더 이상 팔 수 없을 때까지 깊이 아주 깊이 고민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래야 정답을 구하던 구하지 못하던 간에 보다 현명한 판단이나 후회가 없을 거라고 하는군요.

특히, 저자는 위 목차에 언급된 문제들을 막스 베버라는 학자와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글을 통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저자들의 글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회를 봐야지요.

저 역시도 저자의 의견에 깊이 동감합니다. 내가 맞서야 하는 문제들에 너무 신속하게 결정해버리는 게 아니라, 좀 더 여유롭게 깊이있게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는 것, 그것을 고민이라 하던, 생각이라 하던 간에 말입니다. 그래야 좀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쩔 때는 실기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서도.

이 책을 읽다보면, 신영복 선생의 글과 상당 부분 통한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저자가 언급한 타자로부터의 인정, 타자에 대한 배려라는 이야기들을 신영복 선생의 책들에 많이 언급된 나와 다른 이와의 관계와 다르지 않더군요.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은 결국, 사람이 이루는 사회 속에서 나와 남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며, 사회 안에서 사람이 수행하는 많은 활동이나 행위들은 결국 그 사회를 구성하는 나와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머 이런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까요..?

1.
현대라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일 것입니다. 최근 10년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의해 정치와 경제, 사상과 문화는 물론이고 오락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초월해서 한 덩어리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대의 특징으로 '자유'의 확대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인터넷 등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어디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도 있으며, 거기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쉽게 향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자유가 사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p16~17)

덧붙여서 우리에게 큰 중압감을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만을 놓고 볼 때, 경제의 개념과 사상, 테크놀로지 등은 유행이 바뀌는 것처럼 눈부시게 변해 왔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와 같은 것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맞춰 인간 또한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생각에 빠져 있으면 뒤처지고 맙니다. 지금의 상황을 다른 말로 하면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변할 것이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p18)

2.
그 이유를 궁극적으로 말하면 자아라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p39)

앞에서 타자와의 상호 인정을 통해서만 자아가 성립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타자와 연결되고 싶고 제대로 인정을 받고싶을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나는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힘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매우 큰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진지함'이라는 것입니다. '진지함'이란 '어중간함'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중략)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타자와 마주하는 것. 거기에 어떤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자아의 고민의 밑바닥을 '진지하게' 계속 파고들어 가다 보면 그 끝이 있을 것이고 타자와 만날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p42~43)

3.
돈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노동의 보상'과 같은 의미를 떠나 '돈'으로 독립하게 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맙니다. 원래는 '돈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닌' 사람들도 점점 '돈을 위해 일하게' 되고 점점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돈을 위해 돈이 도는' 상태로 변하며, 결국에는 '돈이 돌면 돌수록 돈이 늘어나게' 됩니다. (p56~57)

4.
물론 '무엇이든 알고 있는 박식한 사람'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성'은 '박식한 사람'이나 '정보통'과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다(know)'와 '사고하다(think)'는 다릅니다. '정보(information)'와 '지성(intelligence)'은 같지 않습니다. (p65)

5.
따라서 나는 청춘이란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사회에 이익이 되든 그렇지 않든 '알고 싶다'는 자기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갈망과 같은 것을 솔직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좌절과 비극의 씨앗이 뿌려져 있기도 합니다. 미숙하기 때문에 의문을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위험한 곳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p85)

내가 목격한 것은 이른바 엘리트 학생들이 "필요 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가가 있으면 스킬을 몸에 익히고, 전문지식을 몸에 익히고, 유용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획득해야 한다.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분위기에서 미국화된 프로그램을 필사적으로 소화시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p88)

나는 청춘 시절부터 '나'에 대한 물음을 계속하며 '결국 해답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밖에 없다'라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p91~92)

6.
인생이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적이며,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믿고 해답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쩔쩔매는 일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관계를 선택해야 할지, 상대에 대한 기분을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낳지 말아야 하는지, 쓰라린 경험을 하게될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죽음과 마주할 것인지... (p103)

7.
사회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집합체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자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동료로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한 수단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서 비로소 '거기에 있어도 좋아'라는 인정을 얻게 됩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의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보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의 꿈을 실현시켜 줄지 그렇지 않을지는 다음 단계의 이야기입니다. (p118)

과거에는 제2차 산업인 제조업이 직업의 주류였지만 지금은 서비스없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서비스업을 좀 어렵게 표현하면 '사회관계의 재생산'과 관계가 있는 노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관계를 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웍스(communication works)'입니다. '육체노동'과 비교해서 '정신노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복지나 의료, 판매, 영업 등과 같은 전통적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많은 일이 서비스업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21세기의 직업이 지닌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p119~120)

그 가능성은 백 년 전보다 훨씬 커지지 않았을까요? 막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전문화.세분화가 진행된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단면적인 사람이 되기 쉽지만 현대의 서비스업은 반대로 전인격성(全人格性)을 되찾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스스로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면 결국 '타자로부터의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지위나 명예는 필요없다고 말하면 거짓이 될 터이고 돈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타자로부터의 배려입니다. 그것을 통해 사회 속에 있는 자기를 재확인할 수 있고,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과도 관계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합니다. '자기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좋다'는 실감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p122~123)

8.
생각해 보면 부부에게는 부모 자식 같은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원래는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비탄에 잠기고 상대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모습을 바꾸면서 서로 속에 존재하고 그렇게 쌓인 것이 자기 인생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사랑이 성취되었는지 어떤지는 인생이 끝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p138~139)

9.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나쓰메 소세키에게 여자가 찾아와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듣기에 매우 괴로울 정도의 비통한 이야기였습니다. 여자는 이야기를 마친 뒤에 나쓰메 소세키에게 "만약 나와 같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을 쓴다면 그 여자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살아야 한다고 쓸 것인지" 묻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여자가 세상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렇지만 여자에게 "죽지말고 살아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능 자기 가슴속에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살아 있는 이유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이렇게 몇 백 년, 몇 천 년 계속 되어 온 생명의 습관을 자기 대에서 끝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라면 죽어도 좋겠지요" 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p147~148)

10.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 나가자, 그것은 '고민을 통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뻔뻔할 수는 없겠지요. '진지하게 생각에 골몰한 끝에 뻔뻔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깊게 고민해서 꿰뚫어라'라는 의미입니다. (p167~168)


글 막바지에는 제법 유머러스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할리데이비슨을 탄 저자의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뻔뻔해지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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